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당연필

[스크랩] 「소년의 나라(少年の國)」-제15화

화진혁 2015. 12. 19. 00:31

 



15화 서서히 다가오는 전쟁의 발소리

    

 

  내 나라에 익숙해지려고 애를 쓰는 사이, 조국도 건국과 분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북위 38도선 북으로는 1946년에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되고, 남에는 이듬해인 47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던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과도정부가 설립되었다.

 

1948년이 되자 8월에는 대한민국이, 9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을 선언했다. 조선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출현한 것이다. 그 때까지는 미·영 군과 소련군의 점령에 따른 경계선이었던 북위 38도선이 사실상 '국경'이 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민족 자신의 결단이기 보다 배후에 있는 미국과 소련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었다.

 

앞서 말한대로 3.1 독립운동은 조선민족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애초에 이 운동은 1919년 파리강화의회 석상에서 조선독립 호소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국제법상 유효한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반도 주변 각지에서 임시정부수립 움직임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상해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러시아에는 대한민국의회정부」, 만주에는 고려임시정부」, 국내에도 천도교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정부」 조선민국 임시정부」신한민국 임시정부」 한성 임시정부」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각각 지향한 것과 정치적 배경도 달랐고, 아무리 일본이 패배했다 해도 통일정부를 만들어 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음은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른다.

 

또 북부를 점령한 소련과 남부를 점령한 미국에 의해 신탁통지를 지향한 두 나라의 의도도 통일정부 탄생에는 큰 장애가 되었다. 애초에 북부가 반도 전기 공급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북부 정권이 남쪽에 대한 전기 공급을 중지하기로 결정하자 양쪽의 대립은 깊어져 갔다.

 

이에 대해 남쪽 과도정부는 조선노동당을 참가시키지 않고 선거를 실시해 정식국가 수립을 서두르게 된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남조선 노동당에 속한 일부 무장 군인들이 봉기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내부의 반란과 주민 학살 사건 등이 일어났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그 전조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 나도 그 사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4학년 때 하교 도중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이 모여서 아무래도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온 용대와 영길이에게 얘기하자 곧바로 가자, 가자해서 가게 되었다. 5분 정도 걸어간 큰 도로 한 가운데에는 많은 어른들이 모여 사람 울타리처럼 되어 있었다. 영길이가 그 사이를 용케 파고들어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내 돌아와서는,

 

목이야, !”

이렇게 말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

이번엔 용대가 사람들 틈을 뚫고 들어갔다. 나도 뒤따랐다. 이윽고 모여든 사람들 선두까지 간 우리는 그저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 그것은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남자의 잘린 목이었다.

 

주위에는 권총과 수류탄 등이 놓여있고, 잘린 목을 넣은 커다란 유리 용기엔 알코올인 것 같은 액체로 가득 차있었다. 얼굴은 시커멓게 변색되었고 눈은 감은 채로 머리카락도 수염도 길게 자라 있었다. 우리는 심한 충격으로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드디어 모여든 어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제지하듯 탁자 옆에 서있던 군복 차림의 사내가 소리쳤다.

 

이 남자는 공산주의자요. 지금까지 각지에서 게릴라 활동을 했고, 많은 동포를 죽였소. 이걸 보시오. 이 수류탄을 터뜨리면 금세 여기 모인 여러분은 산산조각이 날 거요. 이 사람이 갖고 있던 무기를 썼다가는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나온단 말이요!”

 

사내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죄상을 낱낱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결국은 그것을 보게 하려고 주위를 돌며 잘린 목을 보이게 걷는 것이었다.

 

나와 용대는 한동안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윽고 심장이 두근거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 허둥지둥 사람들 밖으로 빠져나왔다.

 

봤어? 봤어?”

 

밖으로 나온 영길이가 흥분해 소리쳤다. 우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도망치듯 그 곳을 벗어나 아무 말 없이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 무렵엔 확실히 이런 게릴라 활동이 빈번했고, 그들과 싸우는 정부군의 공격은 집요했다.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모르지만 이 같은 게릴라들이 주도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데모를 일으켰다. 그러면 정부 관리가 그 사람들에게 농지를 분배해주겠다고 회유해 한 장소에 모아 트럭에 올라탔다. 그 후 그들은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처형을 당했다는 얘기가 어른들 사이에 도는 소문이었다.

 

나의 먼 친척뻘 삼촌도 그 중 한 사람으로 데모에 참가했다가 관리에게 속아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끌려가고 말았다. 한동안은 소식이 없었는데, 간신히 돌아온 삼촌은 후에 게릴라 활동에 참가했고,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친구 집에 숨어 있었고, 밤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잠드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가는 것도 도로로는 나가지 않고 가까운 대나무 숲을 통과해 다녔다. 그 대나무 숲은 우리도 자주 갔었는데, 대나무 잠자리를 만들 때 재료를 구하는 곳이다. 거기서 나는 그 삼촌을 만났다.

 

삼촌!” 하고 부르자 삼촌은 순간 당황했지만,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해수 아니냐. 이런 데서 뭐하는 거냐.”

삼촌이야말로, 여기 숨어있는 거에요?”

그래. 여긴 눈에 띄니까 이쪽으로 와라.”

 

삼촌은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가 보니 조그맣게 우묵한 곳이 있었고, 주위의 눈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곳에 앉으니 묘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기가 삼촌의 진지구나.”

내 말에 삼촌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거기서 나는 쭉 생각해왔던 의문을 삼촌에게 물어보았다.

 

삼촌, 공산주의가 나쁜 사람이에요?”

삼촌은 못마땅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런 걸 묻는 거냐?”

얼마 전에 이상한 것을 봤어요. 잘린 목을 사람들에게 보여줬거든. 거기 있던 군인이 말했는데, 죽은 사람은 공산주의인 빨갱이라고. 삼촌도 빨갱이이 맞죠?”

빨갱이? 글쎄, 그렇게 불린 것은 처음인데. 하지만 빨갱이가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야. 이 민족 전체의 행복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부패한 지금의 정치를 바꾸려는 사람들이야.”

삼촌의 눈빛은 진지했다.

 

무슨 말인지 어려워

그렇구나, 해수한테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삼촌 같은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는 게 아니야, 그것만은 잊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여기서 삼촌과 만난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희 할매한테도 말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삼촌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어쩐지 강렬해 몹시 무서웠다.

 

또 하나는 여수 순천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다. 조모의 남동생 부부가 이 사건에 휘말려 조모를 의지해 피난을 오게 됐다. 그 이야기 의하면 이 사건은 육군 연대 부사령관이 일으킨 사건으로 경찰서를 점령하고 일부 고교생까지 총을 들고 정부군과 싸웠다고 한다.

 

정부군이 움직이는 것은 모두 총격의 대상으로 삼아서 지극히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마당 구석에 참호를 파고 낮에는 그 속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군이 한 집 한집을 이 잡듯이 수색하는 무시무시한 토벌작전이었다고 한다. 조모의 남동생 부부도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감행한 것이었다.

 

이들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보다 두 살 위였다. 승일 형이 나에겐 의지가 되는 형 같은 존재가 되었다.

 

승일 형은 차츰 피난 생활에 익숙해지자 우리 삼총사들의 골목대장이 되어 갖가지 놀이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나는 승일 형이 정말 좋아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형을 따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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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글쓴이 : 정미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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