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소년의 나라(少年の國)」-제28화
제28화 친구들과 재회
이윽고 포성 소리도 잦아들어 나는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잠이 들었다.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저씨 덕분에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어이, 일어나라….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버스가 또 가버릴 걸.”
아저씨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주위가 완전히 밝아있었고, 내 몸에는 꾀죄죄한 담요가 덮여 있었다.
“이건, 아저씨가?”
“아침결에 보니 몹시 추워 하길래…”
“고맙습니다!”
나는 깊이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서둘러 담요를 개어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담요를 커다란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곧 울산행 버스가 올 거다.”
이렇게 말하더니 장사 도구인 구두닦이 나무 상자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저씨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버스정류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이윽고 경적소리와 함께 버스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줄지어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그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는데, 구두닦이 아저씨가 나를 부르셨다.
“어이, 꼬마야, 잠깐만…”
아저씨는 근처에 있던 가판대에서 무언가를 사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조그만 종이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배고프지, 버스에서 먹어라…”
“……?”
나는 어리둥절 그걸 받아 들고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봉투 속에는 이제 막 쪄낸 떡이 들어 있었다.
“아저씨, 이건?”
“커서 출세하거든 3배로 갚는 거다. 알겠냐, 멍하게 정신 놓고 있지 말고 서둘러 타지 않으면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못 탈 걸.”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버스정류장 뒤에 놓아둔 구두닦이 나무상자 앞에 앉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여러 번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하고 버스 안에 올라탔다.
제멋대로 운행하는 버스는 변함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보다 먼저 탄 몇몇 학생들 옆에 웅크리고 앉아 종이봉투 안에서 가만히 떡을 꺼내 천천히 입 속에 넣었다. 그 떡은 정말 맛났다. 나는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훔치며 떡을 다 먹었다.
간신히 버스가 울산 읍내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 이상으로 콩나물시루 같았고, 게다가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 때문에 몇 번이나 버스가 옆으로 뒤집힐 것 같아서 정말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버스 여행이었다.
줄지어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과 섞여 나도 버스에서 내렸다.
“해수야!”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해수야! 해수가 돌아왔어!”
그곳에는 용대를 선두로 영길이, 그 뒤로 걱정스러운 얼굴의 할매 모습도 보였다.
“용대, 영길이, 게다가 할매까지, 어쩐 일로 여기 나와 있어?”
“어쩐 일이냐니, 이 자식아.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하냐!”
용대는 마구 소리 치고 화를 내며 뒤에 서있던 할매를 쳐다보았다. 나는 할매를 보는 순간 꾹 참고 있던 뭔가가 폭발한 것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할매-!”
큰소리로 할매를 부르고는 주위에 있던 이들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할매에게 달려들어 엉엉 울었다.
“해수야, 내 강아지. 다행이다, 참말로 무사해서 다행이다.”
할매는 이렇게 말하며 다정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할매, 미안해, 돈을 돌려받지 못했어.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
“이 녀석, 바보 같기는, 돈 같은 건 어찌되어도 상관없단다. 네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주었으니 할매는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할매…!”
흐느껴 우는 내 등을 할매가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셨다.
얼마나 울었을까, 문득 정신을 차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쑥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그럼 용대야, 난 할매를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여기로 올게…”
그런데 용대는 히죽히죽 웃기만 할 뿐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웃기만 해, 용대야. 다시 와서 선화 오빠를 찾아야지.”
“그 일이라면 이제 안 해도 되거든.”
용대 옆에 있던 영길이가 지팡이를 짚으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고갯짓으로 뒤를 보라는 신호를 했다.
“뭐야, 영길이 너까지 왜 그렇게 웃어…”
이상히 여기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거기엔 환하게 웃고 있는 선화가 있었다.
“앗, 선화도 여기 있었어?”
나는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해수야, 실은 너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뭐, 소개라니, 누구?”
“너도 굉장히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야…”
선화가 밝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키가 크고 마치 배우 같은 남자가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저, 선화야… 이 멋있는 형은 대체 누구……”
이렇게 물으려다, “아앗!?”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렇다, 그 사람은 우리가 계속 찾았던 선화의 오빠, 선기 형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친구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선기 형님이 어제 저녁 버스로 이곳에 도착했어.”
“어제, 버스로?”
“응, 나랑 선화랑 다 같이 버스정류장에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네 대신에 버스에서 내린 사람이 선기 형님이었지 뭐야. 다들 너무 깜짝 놀랐지…. 선화는 큰소리로 엉엉 울기까지 했고, 너도 그 광경을 봤어야 했는데.”
용대가 즐겁게 웃으며 코끝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내가 없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니…”
나는 선기 형님과 눈이 마주치자 약간 쑥스러워 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네가 해수로구나, 만나고 싶었다…”
선기 형님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노숙으로 더러워진 손을 배에 쓱쓱 문지르고는 당황해서양손으로 선기형님의 손을 잡았다.
“고맙다, 어제 저녁 선화한테서 다 들었다. 지금까지 계속 나를 찾아주었더구나, 정말 고맙다. 그러고 보니, 넌 참 용기 있는 아이구나. 오로지 혼자서 빌려간 돈을 받으러 경주까지 가다니, 정말 대단하다.”
나는 선화 오빠의 칭찬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선기 형 이야기에 따르면 서울은 고작 3일 만에 점령당했고, 북의 진격으로부터 도망친 시민들은 얼마 안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에 남겨졌는데, 선기 형은 사범학교 학생들과 함께 재빨리 서울 시내를 벗어나 산속으로 도망쳐 숨었고, 배고픔을 견디며 지냈다고 한다. 결국 인천으로 상륙한 연합군과 한국군에게 구출되어 무사히 울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선기 형에 이야기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푹 빠져 들었다. 그런 나와 선기 형의 모습을 선화가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29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