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발췌

[이용교 복지상식]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화진혁 2022. 8. 25. 22:19

최근 경기도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60대 어머니와 40대인 두 딸이다. 이들은 모두 암, 난치병 등으로 투병 중이었고, 건강보험료도 1년 넘게 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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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방에선 어머니와 40대 둘째딸이 각각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도 발견됐다. 9장의 유서에는 난소암을 투병 중인 어머니와 경련이 잦은 희소병을 앓던 40대 큰 딸의 고단한 삶 등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습니다.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주민 등에 따르면 남편(아버지)은 사업부도 후 빚을 남기고 사망해 세 모녀는 2020년 2월 화성시에서 현 거주지인 수원으로 이사하여 2년 넘게 전입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소를 옮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왜, 긴급복지제도가 작동되지 않았을까?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비슷하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60대 어머니의 실직과 30대 큰딸의 투병 등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는 밀린 집세와 공과금 등 현금 70만원이 담긴 종이봉투에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확충했다. 소득의 상실이나 건강상의 문제 등 위기상황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힘들어진 저소득 가구가 정부로부터 생계비, 의료비 등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적극 가동했다. 즉,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기거나 수도가 끊기는 등 정보나 건강보험료 체납 정보 등으로 취약가구를 파악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다.

 

△당사자가 복지급여를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시민이 복지로나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하면 받을 수 있는 복지급여가 360가지이다. 복지급여는 가구상황, 소득과 재산 등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나 가족이 신청할 때 정부가 자격이나 조건에 맞으면 복지급여를 제공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수원 세 모녀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행정복지센터에 상담을 하거나 복지급여를 신청한 내역이 없었다. 세입자이고 암・난치병으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 129로 전화하거나 시・군・구에 신청하면 긴급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긴급복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도 활용될 수 있다. 이 가구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주거급여 수급자로 선정되면 월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질병 치료로 일하기 어렵다는 것이 인정되면 생계급여 수급자로 선정되어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가구는 129, 복지로, 행정복지센터, 시・군・구 어디에도 복지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복지는 신청한 사람만 받을 수 있기에 신청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이제는 신청주의를 바꾸거나 적극 보완해야 한다.

15세 이상 국민은 ‘보조금24’에 가입하여, 국가가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305가지 현금・현물・서비스・이용권 등을 확인하고 일부를 바로 신청할 수도 있다.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국민에게 ‘보조금24’에 가입하도록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해당되는 사람이 신청하면 받는 영아수당, 아동수당, 기초연금, 재난지원금 등을 신청할 때, ‘보조금24’에서 신청하도록 장려하면 좋겠다. 복지급여를 보조금24나 복지로에서 쉽게 신청하고, 보완적으로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신청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복지급여 신청시 증빙 서류를 최소화하고, 담당공무원이 행정정보를 통해 확인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르면 지원을 받기 어렵다

수원 세 모녀 가구는 긴급복지나 기초생활보장을 상담하거나 신청한 적이 없었지만, 정부는 위기 가구라고 인식했다. 이 가구는 보건복지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한 34종의 위기정보 입수자 명단에 포함되어 주소지 담당 공무원이 방문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가구는 건강보험료를 16개월이나 체납하였고, 중증질환, 채무 등으로 위기 가구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 가구는 주민등록상 거주지는 화성이고, 실제 거주지는 수원이었다. 담당 공무원이 사각지대 발굴을 통해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방문하였지만 해당 가구가 살지 않았고,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실제 거주지 관할 지자체도 해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또한 이 가구는 다른 복지급여 신청·상담 내역이 없어 사회보장시스템 내에 핸드폰 번호 등 연락처도 확보되지 않아 지자체가 추가적인 발굴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대한민국의 복지제도는 대부분 당사자가 관할 행정복지센터 혹은 시・군・구에 신청하도록 되어 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은 복지급여를 신청하기조차 어렵다. 수원 세 모녀와 같이 채권자에게 주소가 알려질 것이 두려워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주소가 다른 경우에는 사실상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 의무를 이행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지정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되는, 그런 주거지를 이전해서 사시는 분들에 대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서 이런 일들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어려운 국민들을 살피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신청을 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복지 서비스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전입 미신고 등으로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취약계층의 연락처 등 정보 연계 방안을 찾는 것과 함께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월세신고제’의 적용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예외 조항을 최소화시키면 정부가 실제 거주자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를 포용해야 한다

이 가족은 세 사람 다 암과 난치병 등을 앓고 있었는데도, 병원 진료에 필요한 최소한의 건강보험료마저 16개월 동안 내지 못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국가가 헌법상 규정된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 의무를 방임한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징수율은 99% 수준이다.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에게 분할납부와 결손처분(탕감) 등이 있지만, 당사자가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개월 이상 보험료 체납 가구는 140만 가구인데, 그중 월 보험료 5만원 이하 생계형 체납 가구는 100만 가구 안팎이다. 이들은 ‘건강보험료 체납→건강보험 급여 제한→ 체납 가산금 부과→ 납부 독촉 고지→ 재산 압류→ 병원 이용 제한→ 건강 악화→ 노동력 상실’의 악순환에 빠진다. 국가와 건강보험공단이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포용적 건강보장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위기가구가 긴급 의료비를 신청하면 1회에 300만원까지 지급하는 나라에서 건강보험료를 몇 달 체납했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를 제한하고, 건강 악화로 숨지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이용교 교수

보건복지상담센터 https://www.129.go.kr

보건복지부 http://www.mohw.go.kr

이용교 <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ewelfa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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