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반쪽발이
아버지도 할매도 아직 내가 어렸으니까 학교에 가기만 하면 쉽게 조선말을 배우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소학교는 조선말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조선말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이다. 당연히 수업을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다, 교과서도 마치 기호를 늘어놓은 것처럼 전혀 읽을 수 없다.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까지도 내게 아무렇지 않게 조선말로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선생도 있을 것이다’고 했지만, ‘해방’ 후 반일감정이 강해서인지 의도적으로 일본어를 쓰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시험이 있을 땐 더욱더 비참했다. 글을 모르니 시험 문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백지 답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다. 결과는 언제나 ‘낙제점’이다. 20점 이하 학생은 두툼한 종이에 뭔가를 쓴 팻말을 목에 걸게 했다. 거기에 쓴 글자의 의미조차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팻말을 목에 건 채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교실을 돌아야 했다. 언제나 다섯, 여섯 명이었는데, 나는 물론 단골로 들어갔다. 팻말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몹시 부끄러운 일을 당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팻말에는 < 낙제점을 받은 선수들 >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연히 다른 학생들로부터 엄청난 놀림을 당했다.
“바보야~ 반쪽발이. 멍청아.”
학교 첫 날 만났던 아귀장군 용태와 그의 패거리들도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나는 억울해서 울상을 지으며 학교 안을 끌려 다녔다. 그들은 걸핏하면 ‘반쪽발이’라 부르며 괴롭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알고 나는 너무 놀랐다.
‘반쪽발이’ 그것은 ‘절반은 일본 놈’ 이란 뜻이다.
‘쪽발이’라는 것은 일본인을 멸시하는 호칭이다.
일본인이 신는 양말은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 부분이 나뉘어있다. 그것을 소나 돼지의 발굽에 비유한데서 온 말이다.
그리고 ‘바보’는 일본어의 バカ(바보, 멍청이).
나는 ‘절반은 일본 놈인 바보’라 불리며 모두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용태와 영길이 같은 패거리가 나를 무시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동급생 대부분이 나를 깔보고 있었다. 해방이 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반일감정이 강열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동포인 내가 불합리하게도 그 표적이 되고 만 것이다.
일본에서는 <조선인>, 고향에 돌아오니 <반쪽발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길이 없었다.
겨우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가도 같이 놀 친구도 없는데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녁이 되어 할매가 식사 준비를 하러 돌아오기 전까지는 혼자서 공을 차며 노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공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축구공이 있을 리 없다. 새끼줄을 손으로 뭉쳐서 공하고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혼자서 드리블 흉내를 내거나 있는 힘껏 공을 차서 어디까지 날아가게 할 수 있는지 벽을 향해 세게 차기도 하고 슈팅을 하듯 발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이따금 학용품과 의류를 보내왔다. 현금을 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림물감 튜브 밑에 접힌 부분을 열고 그 속에 가느다란 금봉(金棒)을 숨겨서 보냈다. 그것을 울산 시내에서 돈으로 바꿨다. 덕분에 초기에는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거나 시샘을 받았을 정도다.
봄이 되자 아버지와 어른들의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논은 상당히 넓어 가족들만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모내기와 벼 수확 철이 되면 많은 사람을 고용했다.
일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품삯 외에 점심과 저녁도 주었다. 저녁식사에는 막걸리도 나온다. 식량난이던 시대라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로, 근처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거의 노숙자 상태의 사람들까지도 모여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집 안은 활기를 띠었다. 저녁식사 후에도 막걸리를 마시는 술자리가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아버지도 오랜만에 자신의 논을 경작하니 매우 기분이 좋았다. 나도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어른들에게 물과 밥을 갖다 주거나 가끔은 논에 들어가 거머리에게 물리면서 풀 뽑기를 열심히 도왔다.
그렇게 여름이 되면 벼이삭이 나온다. 완전히 익기 전 이삭에 붙은 쌀은 하얀 액체 상태로 우유 같았다. 이것은 참새들이 매우 좋아하는 먹이다. 이것을 먹기 위해 떼를 지어 날아들었다.
참새들을 쫓는 담당은 여름방학 동안에 내 역할이다. 아직 더위가 한창인데,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열심히 참새를 쫒지 않으면 안 된다. 잠이 덜 깨 아직 졸린 시각에 할매가 나를 깨우셨다.
“어서 빨리 논으로 가거라.”
할매는 이렇게 말하며 기다란 채찍을 건네주었다. 채찍을 들고 논으로 가보니 참새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짹짹짹 힘차게 울어댔다.
“이놈들!” 하고 고함치며 채찍을 휘두르고 땅바닥을 마구 때리면 휙 휙 큰 소리가 났다. 참새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날아오르지만, 완전히 도망친 것은 아니다. 논 옆에 스무 그루 정도 되는 큰 포플러 나무로 도망친 것이다. 그곳으로 ‘잠시 피난’을 한 것에 지나지 않고, 틈을 보이면 또다시 논을 향해 날아들 것이 분명하다.
“이 놈들, 야 이놈들!”
나는 나를 북돋우기라도 하듯 소리쳤다.
논두렁길에 주저앉아 다음 공격을 기다린다. 몹시도 따분한 시간이다. 참새들은 어두워지면 날아다니지 않는다. 그때까지 누가 오래 참는지 겨루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있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짜증이 났다. 더위도 큰 적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해질녘에 서둘러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할매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어두워 질 때까지 쫓지 않으면 참새들이 쌀을 다 먹어버리잖아.”
집에서는 토끼도 키웠다. 열심히 번식을 시켜 그것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 일부가 내 용돈이 되기 때문에 토끼를 키우는 일만은 열심히 했다. 토끼의 먹이가 되는 클로버를 뜯어오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었다.
*제8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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