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짓궂은 장난질과 모험의 나날들
그 후 내 주변에는 친구들이 차츰 늘어갔다. 동시에 밤놀이 시간도 많아지게 되었다. 특히 결투가 있은 후로 완전히 사이가 좋아진 골목대장 용대와 늘 그 녀석과 붙어 다니는 영길이는 항상 같이 놀았다.
밤이 되면 집 근처에 있는 선로 위에 함께 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는 구 일본군 비행장 철거지가 있었는데, 거의 방치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자주 그곳에 몰래 들어갔다. 우리가 노린 것은 연습비행기의 방풍 유리창이었다. 기체 주변에 널려있는 방풍유리를 주워 바깥으로 가지고 나왔다. 늘 가던 선로로 이동해 큼지막한 유리파편을 망치로 깬다. 그것을 셋이서 나눈 후 그 파편을 코끝으로 가져가 숨을 크게 들이쉰다.
“좋은 냄새가 난다―”
“기차선로 침목에 문지르면 훨씬 더 좋은 냄새가 나.”
그렇다, 방풍유리는 ‘향이 나는 유리’였다.
“이걸 태우면 훨씬 더 좋다고 하더라고.”
용대의 말에 우리 둘은 ‘해보자, 해보자’ 하며 동의했다.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작은 유리파편에 불을 붙여보았다.
단숨에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선로 위에 올려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더니, 이윽고 노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보니까 더없이 예쁜 불꽃이었다. 그리고 코끝으로 냄새를 맡았을 때 났던 향긋한 냄새가 주위에 자욱했다.
“굉장하다, 진짜 좋은 냄샌데…”
진지한 목소리로 영길이가 말했다.
“정말이네. 근데,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야. 다른 애들한테는 알려주면 안 된다.”
용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선화에게만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려준다 해도 그녀가 이곳에 올 수는 없으니까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뭐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묘한 표정을 지었나보다.
“야, 해수. 뭘 그렇게 히쭉히쭉 웃고 있어. 재수 없게.”
용대한테는 내 속마음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요코하마에 살던 시절에 해수욕을 갔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울산에 와서도 위험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다.
겨울이 되어 저수지가 온통 얼어붙으면 아이들의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된다. 일본 같으면 스케이트를 타는 곳이 되겠지만, 한국에서는 썰매 같은 것으로 미끄럼을 탔다.
위쪽에 나무틀을 만들고 거기에 올라앉는다. 아래쪽에는 각목 두 개를 대고 거기다 굵은 못을 박아 미끄러지기 쉽게 만들었다. 나무틀에 앉아 양손으로 쥐는 송곳처럼 생긴 것을 스키 스톡처럼 써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모든 걸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우선 용대가 자기 썰매를 만들면 그것을 견본으로 내 썰매를 만들었다.
“이 상자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위험해.”
“못은 똑바로 박아야 잘 미끄러진다구.”
용대가 꼼꼼하게 가르쳐 주었다. 결코 근사하다고는 못하지만 꽤 멋진 썰매가 완성 되었다.
저수지로 가보니 전면이 얼어있어서 가슴이 설렜다.
“해수야, 저쪽 저수관이 있는 곳은 얼음이 얇으니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용대가 주의를 줬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위험한 놀이가 더 재미있는 법. 물론 나도 애들이다. 꽝꽝 얼어있는 얼음 쪽보다 얇은 얼음이 있는 곳에서 미끄럼을 타면 얼음이 휘어지는 느낌이 들어 분명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해수야, 그쪽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용대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저수관이 있는 쪽으로 갔다. 예상했던 대로 얼음이 휘어지는 듯 썰매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이것 봐~ 이쪽이 더 재밌다구.”
“위험하니까, 그만 둬!”
용대의 고함소리가 들리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얼음이 깨졌고, 나는 차가운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곧바로 떠오른 나무판을 붙잡았기에 가라앉지는 않았다. 송곳을 써서 얼음 위로 올라오려고 했지만, 얇은 얼음은 잇달아 깨지고 말았다.
“얘들아, 나 좀 살려 줘!”
멀리서 지켜보는 두 녀석의 얼굴이 분명히 보였지만, 둘 다 무서워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젠장! 이런 곳에 내가 빠질 줄 알아!”
스톡 대신으로 쓰는 송곳이 간신히 깨지지 않는 얼음에 꽂혔다. 그걸 지탱해 겨우겨우 얼음 위로 올라왔지만, 배 아래쪽으로 흠뻑 젖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이 추웠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내 말을 안 들은 해수 니가 잘못한 거야.”
용대의 말이 당연했지만 추위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두 녀석을 남겨두고 훌쩍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내 책임이라는 걸 알기에 어느 누구에게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집에 도착해 할매에게 꾸지람을 들으니 더더욱 내가 한심스러웠다.
우리말을 알게 된 후 두 사람 이외에도 친구가 더 생겼다. 친구가 많아지다 보니 타고난 내 장난기도 점점 더 발휘 되었다.
학성공원은 아이들의 더없는 놀이터로 계절별로 다양한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가을이 되면 밤나무 숲으로 밤을 따러 갔다. 물론 ‘무단으로 서리’를 하는 것이다.
친구와 둘이서 기다란 봉을 들고 밤을 따러 갔는데, 몸집이 큰 내가 밤나무에 올라가 밤송이를 봉으로 두드려 떨어뜨렸다. 꽤 많이 수확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관리인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큰일 났다, 도망쳐야 해.”
친구의 말을 듣고 당황한 나는 들고 있던 봉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야~!”
친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떨어뜨린 봉이 그 친구의 후두부에 맞아버려 그 충격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친구가 넘어진 곳에 튀어나온 돌이 있었고, 그 돌에 그 친구가 이마를 몹시 세게 부딪히고 만 것이다. 간신히 내가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그 친구도 겨우겨우 일어났다.
“으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친구의 얼굴에 새빨갛게 피가 나 있었다. 달려온 관리인조차 꾸지람을 하는 것도 잊은 채 들고 있던 수건으로 그 친구의 얼굴을 닦아 주면서,
“상처가 너무 심한데. 빨리 의사한테 가서 꿰매달라고 해라, 어서 서둘러!”
관리인이 당황해 말했다. 우리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급히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후 그 친구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이마에 ‘V자’ 흉터가 남고 말았다. 흉터가 군대 계급장과 비슷해서 그 후로 그 친구는 ‘일등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애들은 기회만 있으면 다양한 장난을 해보고 싶어 한다.
4학년 여름 어느 날 밤, 용대와 영길이가 내 방에 놀러왔다. 밤에 노는 게 더 즐겁다. 그렇게 놀다보면 지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길이가 피곤했는지 잠이 들고 말았다.
“이 자식, 기분 좋게도 자빠져 자고 있네.”
용대가 잠시 영길이의 자는 얼굴을 쳐다보고 있더니 갑자기 영길이의 사타구니를 겨냥해서 바지 위로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 힘껏 튕겨 맞췄다.
“야, 일어나~”
그런데 얼마나 고단했는지 영길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이 자식 뭐야, 꿈쩍도 안하네.”
용대와 나는 살그머니 눈을 맞춘 뒤 영길이의 바지를 내리고 그 녀석 고추를 고스란히 밖으로 꺼내놓았다. 그런데도 영길인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심한 장난기가 꿈틀꿈틀 고개를 쳐들었다. 책상 서랍에서 연줄로 쓰는 실을 꺼내 온 뒤 우리 둘은 히쭉히쭉 웃으며 영길이의 고추를 실로 묶었다.
“크크큭큭”
우리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실 끝을 잡고 마치 낚시를 하는 것처럼 영길이의 고추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빙빙 돌려보기도 하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영길이의 고추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고추는 더 점점 커져갔다.
“아야, 아야앗!”
결국 영길이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고 말았다. 나와 용대는 허둥지둥 실을 풀려 했지만, 실이 고추에 끼어 버린데다 영길이가 아파서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좀처럼 풀리지가 않았다.
“아야, 아야, 아야!”
영길이의 비명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빨리 이 녀석 입을 막아.” “이 자식 몸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
필사의 격투로 간신히 실을 풀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둘 다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영길이는 상당히 아팠던 모양인지 엉엉 울면서 사타구니를 누르고 있었다.
경우 통증이 가시고 난 후 영길이는 몹시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이좋은 삼총사였는데, 그 뒤로 한 동안 영길이는 우리와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제14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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