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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임산부 뱃지 모으기 58일 간의 여정

임산부 뱃지 모으기 58일 간의 여정

2025-06-13

 

 

임산부 뱃지 모으기 캠페인의 시작- 돈이 없어 뱃지를 못 만들다니!😫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에 복귀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애 낳으세요" 대책 쏟아지는데…예산 없어 '임산부 배지'도 못 만든다ㅣ머니투데이

 

1년 전, 임신한 몸으로 출퇴근을 하던 지하철에서 임산부 뱃지 덕분에 여러 번 양보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거의) 매일 분홍색 임산부석에 앉아 뱃지를 내놓고 편히 출퇴근했습니다. 임산부 뱃지는 2006년 희망제작소가 처음 제안하여 우리 사회에 안착한, 소중한 임산부 배려 제도입니다. 그런데 초저출생 시대인 요즘, 이 뱃지를 못 받는 임산부들이 있다니! 아마 초기 임산부일텐데 초기일수록 임산부 뱃지는 더욱 요긴합니다. 

 

그래서 먼저 보건복지부에 질문을 보냈습니다. 

  • 임산부 뱃지 재고가 없어 배부가 안된다는 기사(2024년 6월)를 읽었습니다. 
  • 현재도 재고가 부족한지, 지금은 임산부에게 뱃지가 잘 배포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예산이 부족해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기사에 나왔는데, 그런 문제가 또 반복될 수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 임산부 배려 엠블럼은 매년 8월 말~9월 초 사이에 제작 및 배부되며, 각 지자체별 수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재고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 임산부 배려 엠블럼 제작 예산 확보 및 각 지자체 별 적절한 배부를 통해 대상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는 답변이었습니다. 재고 부족 문제가 또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동시에 저희 집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제 임산부 뱃지가 떠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육아를 하느라 어딘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버린 적은 없으니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과연 집에 가서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신발장 한 구석에 임산부 뱃지가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저 뿐만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임산부 뱃지 모으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출산 후 잠들어있는 임산부 뱃지들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캠페인입니다.  

 

 

임산부 뱃지 반납할 수 있다면?…산부인과, 주민센터, 우체통, 보건소?!

캠페인 기간 동안 소량의 임산부 뱃지가 모였습니다.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내주신 분도 있고, 희망제작소 출입문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내어 모아주신 소중한 뱃지들입니다. 이 뱃지들은 그동안 뱃지를 받지 못했던 임산부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남은 뱃지들은 뱃지 재고가 부족한 보건소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의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임산부 뱃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모았습니다.

 

  • “임산부 뱃지를 반납하도록 하여 재사용해야합니다.” 
  • 산부인과 병원, 보건소, 소아과 등으로 뱃지 반납처를 다양화하면 뱃지 회수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 “출생신고 시 주민센터를 가게되니 주민센터에서 모아주시면 어떨까요?”
  • 우체통에 바로 반납할 수 있다면 편할 것 같아요.”
  • “임산부 뱃지를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 “뱃지를 반납하면 지역화폐로 지급해주면 좋겠어요.”

 

임산부 뱃지는 매년 20만개 정도 새로 만들어집니다. 1년 간 사용하고 버려질 플라스틱 쓰레기를 매년 양산하는 셈이죠. 임산부가 아님에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위해 뱃지를 사거나 양도받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뱃지가 계속해서 추가로 공급되다 보니 이런 일도 있는 게 아닐까합니다. 그래서 출산 후 뱃지를 반납하도록 하여 재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위 내용은 보건복지부에 전달했고, '의견주신 개선 방안을 검토 후 반영하여 임산부 엠블럼 효과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번 캠페인 취지에 동감하여 보도한 언론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캠페인의 취지가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시민참여 임산부 뱃지 캠페인 해보고 나니…뱃지 반납제와 인센티브 필요해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며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모아낸 뱃지의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대규모 예산을 들여 홍보를 하지 못한 탓도 있고, 캠페인 참여 당사자인 출산한 엄마의 입장에서 굳이 뱃지를 보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바쁜 육아 중에 뱃지를 포장해 우편으로 부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셨을 듯 합니다. 그래서 뱃지 반납제를 운영한다면 반납을 유인할 분명한 인센티브가 꼭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산부 뱃지 모으기 캠페인이 남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산이 부족한 탓에 임산부 뱃지를 받지 못하는 임산부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더불어 임산부 뱃지 제도의 개선 아이디어를 모으고, 반납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5년 정부는 20조원 가까이 지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고작 1~2억원이 소요되는 임산부 뱃지 사업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행되지 못 하는 것을,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재고가 없어서 임산부 뱃지를 받지 못하는 예비 엄마가 없기를, 더 나아가 임산부 뱃지를 재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임산부는 사회의 특별한 배려를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혹시 '임산부협회'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런 협회는 없습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임신할 수 있지만 영원히 임신하는 여성은 없기에, 임산부는 뭉쳐서 주장하거나 행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임산부였던) 우리의 엄마에게서 태어났고,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생명도 그럴 것입니다. 임산부 뱃지는 단순한 뱃지가 아니라 임산부를 배려한다는 사회적 약속의 표시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동체 배려의 상징입니다. 저출생 시대 극복, 임산부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출발했으면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도 주변의 임산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배려해주시기를, 그래서 손에 잡히는 희망을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글: 이규리 시민연결팀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