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애 선생님
1994년부터 태백에 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석탄 합리화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태백의 경제적 살림은 약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육도 주거도 열약한 환경이었는데 어떻게 태백 살이를 결심하셨을까요?
정신애 선생님의 태백 살이는 대학생 시절 친구 셋이서 광산지역 사회사업이 궁금해 기차여행을 온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교회 사회사업에 관심이 있었던터라
태백에 있는 ‘광산복지선교회’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던 이유도 여행의 목적에 있었습니다.
당시 광산복지선교회에서 처음으로 경험하셨던 봉사가 ‘도시락 배달’이었고,
덕분에 태백 구석구석 진폐환자 분들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봉사하면서 만나게 된 연동교회 목사님(당시 광산복지선교회 총무)께서
정신애 선생님께 “너 여기서 일해보지 않을래?”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에 “네!”라고 대답한 것이 태백 생활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그 당시 광산복지선교회를 보면서
교회 사회사업의 모델이라고 생각하셨고 배울 것이 많겠다 싶었기 때문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거주하면서 처음 맡아 하게 된 된 일은
진폐환자분들 집집마다 찾아뵙고 만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 듣고, 노동 상담 등 하는 일이었습니다.
태백 내에서만 8번을 이사하면서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고,
결혼과 출산 미래를 생각하면서는 여러 차례 태백을 떠나리라 다짐하고 짐도 꾸렸다 풀었다 하셨지만 떠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을 마음으로 품게 된 것이지요.
당시 일로써 직접적으로 찾아뵙고 관계했던 지역 주민 내지 진폐환자 분들이 800여명이라고 합니다.
한분 한분의 성함을 외우고 만날 때마다 성함을 부르며 만났다고 합니다.
또한 집집으로 찾아가서 당사자의 삶의 터전에서 관계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난 20년 태백 구석구석 골짜기마다 안 다녀 본 곳 없고, 황지에 나가면 곳곳마다 어르신들이 “정신애 선생님”하고 부르며 인사하셨다고 합니다.
그당시 집집마다 다니며 당사자 분들 거들어 드렸던 온갖 일들을 떠올리며 말씀하십니다.
미장, 들 짐 울러 업고서 4층 건물 오르내리기, 도배, 김장 1000포기, 자살하시거나 객사하신 분들 시신 처리하는 일 등등...
과연 그 하신 일들을 듣다 보니,
태백 땅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결코 하실 수 없었을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애 선생님도 말씀하십니다.
“저는 복지사가 아니라 태백 사람으로 살았어요.”
그리고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정신애는 내 딸이야..”
당사자가 사회복지사를 선생으로 보거나 물건·돈 주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딸’로 보고 가족으로 대한다는 것,
마땅히 정신애 선생님이 당사자를 인격으로 관계·소통해 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태백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센터장으로 계십니다.
당시 몸소 뛰며 배운 한 원리를 지금은 하나의 사업 원칙으로 삼고 실천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사업에 있어 반드시 필요 한 것은 가정방문이다.”
선생님이 하신 이 말씀의 의미는 복지사업은 당사자를 위한 것,
당사자로부터 시작 되는 것, 당사자가 삶속에서 이루게 거드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당사자의 삶의 터전으로 들어가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하신 정신애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고이 세겨둡니다.
대학생 시절 올라와서 지금까지 쭉 지내오신 선생님의 태백 생활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공부는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공부가 지식을 채우는 것에서 끝난다면 그 공부 아무리 해봐야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허나 배우면 배울수록 실천 현장으로부터 멀어지는 한국사회의 모순적인 교육과
일터의 괴리에 마음이 불편 할 따름입니다.
어찌되었건 정신애 선생님은 태백에서 사회사업가로서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히며 삶으로 복지를 배우셨습니다.
이제서야 “뒤를 돌아보며 아,, 내가 해 온 이 일은 교과서에 이 부분을 실천 한 것 이었구나?”하고
이해하게 된다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도 당사자의 삶 속에서 몸소 부딛히며 치열하게 배우고, 집에 돌아와서는 교과서를 펴고
이론으로 당신의 삶 성찰 하시는 정신애 선생님의 '참 공부'의 모습,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들으면서 큰 자극과 도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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