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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당연필

[스크랩] 「소년의 나라(少年の國)」-제20화






20화 진흙 경단 싸움

 

  내가 다니던 복산(福山)소학교는 갑작스럽게 야전병원으로 사용하게 되어 학교에서는 수업을 할 수 없었다. 대신에 학성공원에서 야외수업을 하게 되었다. 교육내용도 이전의 반일교육뿐 아니라, 반공을 목청 높여 부르짖게 되었다. 선생님의 목소리 또한 상당히 신경질적이었고, 그 긴장감은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었다. 가까운 중학교에서는 군 고문이 지도하는 군사훈련도 시작되어 긴장감이 점점 더해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이들의 마음도 거칠어져갔다. 가까이에서 어른들이 전쟁을 하면 아이들도 따라 흉내를 내게 된다.

어느 날, 이웃 부락 아이들과 우리들 사이에도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라고는 하나 우리들의 경우 전쟁놀이로 진흙 경단을 서로 던지는 몹시 심플한 싸움이었다.

 

상대 쪽이 인원수가 많았으므로 처음에는 그들이 먼저 <공격>하고, 우리가 <수비>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자, 우리 집을 진지로 삼는 거야. 어른은 할매 뿐인데다 일찍 주무시거든.”

좋아, 그렇게 하자.”

 

밤이 되면 적은 우리들의 진지인 우리 집으로 은밀하게 접근해 온다.

우리 군은 철저하게 진흙 경단을 준비해 <적의 습격>에 대비한다. 적들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군의 대장역할은 전에 얘기한 친척 승일이 형으로 나는 참모역이다. 용대와 영길이도 함께였다.

 

인원수로는 불리한 우리 편에는 든든한 아군이 있었다. 사실은 적 가운데 몰래 척후병을, 말하자면 스파이가 있었던 것이다. 승일 형이 읍내에서 미군에게 얻은 추잉 껌으로 매수했는데, 적의 작전이 결정되면 스파이는 비밀리에 적의 습격에 앞서 진지까지 오는 경로를 전달해 주고 승일 형에게 껌 하나를 받아 만족스럽게 질겅질겅 씹으며 돌아갔다. 적은 우리 편에 그런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적의 작전은 곧바로 우리에게 누설되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승일 형이 작전을 지시하기 때문에 대응은 정확했다. 집 밖 마당 끝에서 기다리다 선제공격을 할 때도 있었다.

 

오늘은 작전B로 한다.”

 

승일 형이 신호를 하면 우리는 모두 함께 뒷문으로 나갔다.

 

살그머니 뒤로 돌아가는 거다.”

 

적이 어느 방향에서 올 것인지는 스파이의 보고로 이미 알고 있었다. 적의 전선을 우회해 후방에서 공격을 펼쳐 논두렁길에 잠복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적은 우리가 잠복하고 있는 장소를 통과해 아무도 없는 진지를 공격을 해 온다. 그 때를 기다렸다가 후방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우와아!”

 

함성소리와 함께 일제히 공격 개시다. 적은 허를 찔려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치는 등 뒤에서 사정없이 진흙 경단을 던지는 것이다.

 

와와와~ 물리쳤다!”

이겼다, 이겼어!”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순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모든 싸움은 연전연승이었다. 싸움에서 이긴 우리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연달아 지고만 적은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차츰 난폭한 공격을 준비하게 되었다.

 

오늘 밤은 어느 쪽에서 올까?”

그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정보가 들어온 다음에 정해도 늦지 않아. 장비만 빈틈없이 준비해 두자.”

 

승일형은 여유만만이었다. 우리는 진흙 경단을 반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날 밤은 <협공>작전으로 정했다. 적이 쳐들어오는 길 양쪽에 아군을 잠복시켜 충분히 적을 끌어들인 다음에 승일형의 신호로 양쪽에서 진흙 경단을 던진다. 적은 우리의 공격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적의 공격 방법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용대가 별안간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으아, 아야야!”

 

이렇게 소리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용대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가슴에 진흙 경단을 맞았는데, 평소와는 촉감이 달랐다. 찌릿한 통증이 있었다. 발밑에 떨어진 진흙 경단을 살펴보니 속에 돌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비겁한 놈들!”

 

내가 소리치자 승일형이 왜 그러는데?’ 하고 물었다.

 

말도 안 돼, 돌이 들어있어. 위험하잖아.”

 

안 되겠다, 일단 후퇴다.”

 

이날 밤은 완전한 패배였다. 우리는 적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후퇴했다. 진지로 돌아온 우리는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했다.

 

우리도 뭔가 방법을 생각해야만 돼.”

그건 그렇지만, 그 자식들 치사해.”

적 대장하고 얘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완전한 룰 위반이라구.”

아냐, 소용없을 걸. 눈에는 눈이라고, 우리도 뭔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

우리도 돌을 넣는 거야?”

아냐, 그 자식들이 경단에 돌을 넣었으니까, 우리는 아예 돌을 무기로 쓰자.”

어쩌려고?”

새총. 내일 낮에 다 같이 새총을 만들자. 그리고 여기 진지로 작은 돌들을 모아 오자.”

그거 좋다. 좋아, 내일은 꼭 이길 거야!”

 

이리하여 우리들의 전쟁은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말할 것도 없이 군비를 강화한 우리 군은 다음날 전투에서 승리했다.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듯 도망치는 적에게 도망치는 꼴 좀 봐라~!’ 며 큰소리로 욕을 퍼부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새총 같은 건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적도 곧바로 새총을 준비했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은 진흙 경단 전쟁이 아니었다. 거의 <총격전>으로 <접근전>의 재미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맞으면 몹시 아파서 진흙 경단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설프게 있다가는 제대로 부상을 당하고 만다. 몸을 숨기고 이따금 얼굴을 내밀어 새총을 발사하는 것뿐이라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이긴 건지, 진 건지도 잘 몰랐다.

 

어쩐지 재미없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용대가 과격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적을 혼내 줄 무기가 있으면 되지 않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권총이라도 가져오겠다는 건 아니지?”

권총 같은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치만 아마 이거라면 그 자식들을 혼내줄 수 있을 거야. 실은 연습 삼아 만들어 본 게 있거든.

 

용대가 준비하고 있던 건 수제 화살이었다. 화살촉 부분이 날카롭고 뾰족했다. 나는 순간 그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용대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머릿속에 위험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만들면 위력이 약해. 화살촉을 제대로 만들어야지.”

 

아마도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살벌한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에 진 것이라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싸움에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평소와 같은 냉정함을 잃고, 이성 따위는 어딘가로 모조리 날아가 버리고 마는 존재다.

 

나는 무서운 제안을 했다.

 

못을 끝부분만 철도 선로위에 줄지어 올려놓자. 그러면 끝이 예리해 지거든. 그걸 화살촉으로 쓰는 거야.”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을까.”

 

영길이의 눈은 겁에 질린 빛이 역력했다.

 

재밌겠다. 어차피 할 거면 그 정도는 해야지 않을까.”

 

용대의 눈빛은 평소와는 다른, 어쩐지 잔인한 눈빛이었다.

 

우리는 수십 개의 못을 들고 선로로 향했다. 빈번하게 오가는 군용 열차 때문에 반짝반짝 빛나는 선로 위에 못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 다음은 열차가 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돼.”

 

선로 옆 둔덕 아래로 내려가 몸을 숨기듯 쭈그려 앉았다.

 

오늘 밤은 재밌겠는 걸.”

 

용대의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영길이는 여전히 겁먹은 채였다.

 

괜찮아. 엄청난 무기가 될 거야.”

 

나의 기세는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어 갔다. 이윽고 열차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왔다.

 

왔다!”

 

열차가 통과한 다음 우리는 둔덕을 달려 올라갔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못은 여기저기 흩어져 열 개 정도가 남았을 뿐이었다. 몇몇 개는 열차바퀴에 달라붙었다가 멀리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남은 못을 주워 확인해보니 끝부분이 납작하게 눌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빛이 났다.

 

됐다. 이걸 화살에 달기만 하면 굉장한 무기가 될 거야.”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문득 내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덮쳐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나는 우물가로 갔다. 못 끝부분은 연마하기 위해서였다. 숫돌을 써서 못 끝을 갈자 드디어 예리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 선화가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왔다.

 

해수야, 뭐 하고 있어?”

, 선화야!”

 

그녀와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어쩐지 우물가에서 자주 볼 수 없었다.

 

그게 뭐야?”

 

나는 히죽 웃고는 예리해진 못을 자랑스럽게 선화에게 내보였다.

 

이거 봐, 굉장하지 선화야. 이걸 화살촉에 달면 엄청난 무기가 될 거야.”

 

선화는 곧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날카로운 못을 보다가 이윽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해수야, 왜 그런 걸 만들어?”

……?”

그렇게 위험한 것을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거야?”

 

자랑할 셈이었던 나는 전쟁놀이에 쓴다고는 대답하지 못하고 말았다. 선화의 눈에 왜 그런지 눈물이 글썽였다.

 

선화야, 왜 그래?”

……

 

선화는 주저앉아 얼굴을 묻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왜 우는 거야? 선화야

 

나는 있는 힘껏 선화를 달래려고 했다. 선화는 눈물을 글썽이며 일어섰다.

 

어째서 다들 그렇게 무서운 물건들을 만드는 건데?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어?”

 

나는 선화가 울면서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제21화로 이어집니다

출처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글쓴이 : 정미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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