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아이들과 전쟁
전쟁은 어른들 세계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인정사정없이 덮쳐온다. 식량사정 악화는 식생활을 위협했다. 아이들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다. 정전이 잦아져 전등도 켜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상어의 간을 햇볕에 말려 기름을 짰다. 그 기름을 무명 솜에 적셔 전등불 대신으로 태웠는데, 어두운데다 연기가 심해 천정까지 이내 새까맣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용대, 영길이와 함께 선로 둑방 아래에 있는 휘발유 송유관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이음새 부분을 헐겁게 만들어 휘발유를 훔치는 것이다. 밤이 되면 병을 들고 가 조금씩 훔쳐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선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지라 점점 기름을 훔치는 사람이 늘어갔다. 그 중에는 당당하게 도둑질을 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이 지경에 이르자 독점 판매를 목적으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 일때문에 두 친구와 의논을 했다.
“여긴 노리는 녀석들이 많아져서 더는 안 되겠어. 다른데 기름이 있는 곳은 없을까?”
“그러고 보니 역 구내에 드럼통이 아주 많았어.”
“그치만 역은 경비가 심하잖아. 둑방 아래는 외진 곳이라 눈에 띄지 않는데, 역 구내는 그렇지 않아.”
“괜찮아, 가장자리 쪽에 멈춰있는 화물칸을 방패삼아 몰래 다가가면 돼.”
“맞아, 그렇게 하면 훔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럴 때 아이들은 여세를 몰아 대담한 짓을 하고 만다. 이때도 모두의 의견을 모아 일사천리, 다음날 밤늦게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드럼통 뚜껑을 여는 도구와 각자 기름을 담아 올 병을 준비해 조심조심 휘발유가 있는 장소로 다가갔다. 간신히 경비원에게 들키지 않고 드럼통 하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작업은 모든 것을 말없이 해야만 한다. 사전에 역할을 정해서 먼저 용대가 준비한 스패너로 뚜껑을 열었다. 나란히 쌓아 놓은 드럼통에서 휘발유가 새나왔다. 그것을 병에 담았다. 간신히 두 병 분량을 채웠을 무렵 망을 보고 있던 영길이가 뒷걸음질 치듯 다가와서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안 되겠어. 누가 이쪽으로 와.”
“큰일 났다, 어쩌지.”
이 말을 하는 순간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 거기 웬 놈들이냐!”
우리는 병을 끌어안고 도망치는 토끼처럼 내달렸다. 하지만 뒤쫓아 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용대가 소리쳤다.
“큰일 났다, 총을 갖고 있어! 저 둑방을 넘어서 반대쪽에 엎드리자!”
둑방을 넘어간 곳 수로 옆에 자라난 풀숲으로 간신히 도망친 우리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아마도 경비원은 둑방을 넘어 쫓아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한참 후 용대의 신호로 우리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 같이 말없이 현장을 벗어났다. 이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까지 왔을 때 우리는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서인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깨달은 것인데, 총을 든 경비원이 발포하지 않았던 이유는 총알이 튀어 드럼통에 맞아 일어날 화재를 염려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걸 알았을 때 우리 셋에게 진짜 공포가 밀려왔던 것이다.
우리가 노렸던 것은 기름뿐만이 아니었다. 군의 통신용 케이블도 표적이 되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얘들아, 저 케이블을 잘라서 쓰면 근사한 그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나무 가지에 매달아서 말야.”
이 한 마디가 우리를 충동질했다. 이렇게 되자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다시 또 면밀한 ‘작전회의’가 열렸다. 학성공원 뒤 쪽에 있는 나무를 선정해 케이블을 묶을 가지도 정했다. 이에 따라 필요한 케이블의 길이도 정해졌다.
우리의 ‘작전’은 보기 좋게 성공해 지금까지 놀아보지 못했던 훌륭한 그네가 완성되었다. 흔들리는 폭이 커서 너무 신이 났다. 번갈아 가며 실컷 그네를 타고 놀았다.
하지만 이 케이블 도둑질은 기름을 훔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대한 잘못으로 나중에 마을 사람들까지도 위험에 빠뜨리게 한 대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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