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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당연필

[스크랩] 「소년의 나라(少年の国)」-제1화

1화 국민학교와 전쟁 속에서


1장 전쟁의 기억


  그 날, 내 발걸음은 조금 긴장되어 있었다. 국민학교(소학교) 입학식에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첫 경험은 누구라도 긴장한다. 동시에 어쩐지 설레는 기분도 들기 마련이다. 긴장감이 앞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부터 내 이름이 바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와타(岩田)>라는 일본에선 매우 흔한 성()으로 불렸는데, 오늘부터 학교에 가면 <>이라는 성으로 말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당시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너의 진짜 이름은 김해수. 학교에 가면 이 이름으로 당당하게 행동해라.”

아버지의 표정은 어쩐지 긴장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아는 건 그 뿐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쓴 이와타라는 성은 가짜에요?”

이와타는 통칭명(재일동포들이 생활상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일본식 이름)이지, 본명은 아니다, 네 진짜 이름은 김해수야.”


이제 와서 이런 말을 듣는다고 실감이 날 리 없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일본정부(조선반도에서는 조선총독부)는 공민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조선인에게 대일본제국의 국민이 되어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했다. 그 일환으로 조선식 성명은 어디까지나 호적에만 기록하고, 새로 지은 일본식 성명을 쓸 것을 강요했다. 이것이 창씨개명이다.

창씨개명이 실시된 것은 내가 태어난 지 1년 후인 1940(쇼와15)이다. 정부(조선총독부)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강제가 아닌, 조선인 자신들의 요망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초 개명 신고를 한 것은 전체 가호수의 3.9%에 지나지 않고, 그 후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취업차별과 자녀들에게 행해지는 따돌림, 비국민 취급 등 모든 수단을 통해 강요한 결과 거의 80%가 일본식 성명을 관청에 신고(설정 창씨개명) 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개명 신고를 하지 않은 20%에 해당하는 이들은 관청이 성씨를 정한(법정 창씨개명)대로 조선식 성명을 쓰게 되었다.

개명이 한창이었을 시기에 이때까지 일본식 이름으로 살았던 나를 국민학교 입학 때가 되서야 김해수란 이름을 쓰도록 한 걸 보면 아버지는 당시 <설정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복잡하고 깊은 심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부모님 모두 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그 진위를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입학식을 끝내고 새로운 교실에 들어가자 곧바로 교사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오키(青木), 우에다(上田), 키노시타(木下)

여기까지 부르더니 교사가 출석부에서 눈을 떼고 순간 내 쪽을 보았다.

다음이다

나는 긴장하며 교사의 얼굴을 보았다.

드디어 교사가 출석부를 다시 보며 김해수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이 불리자마자 조용하던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주위를 힐끔힐끔 둘러보았다.

그 날은 그것뿐이었고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긴장했던 탓인지 몹시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쉬는 시간, 반 친구 하나가 소리쳤다.

저 자식, 이름이 김해수라고 했지. 그럼 조선인이 틀림없어.”

그러자 몇몇 동급생이 그 말을 거들기라도 하듯

맞아, 조선인이야.”라고 크게 소리쳤다.

죠센진(朝鮮人)! 죠센진!”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애들은 네 댓 명이었지만, 내게는 주위에 있던 동급생이 한꺼번에 소리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죠센진!

조선인은 불쌍해~ 지진이 났을 때 돼지를 업고 도망쳤다~ 아하하하.”

동급생은 이상한 노래까지 부르며 내 주위에서 소란을 떨었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나는 심술궂은 표정의 동급생들에게 둘러싸여 생각했다.

난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자랐는데 김해수란 이름을 말한 것 때문에 왜 이렇게 놀림을 당해야 하는 거지

마음속 외침이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저 바닥을 쳐다 본 채 눈물만 글썽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선반도에서 일본으로 온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말하자면 재일 2세가 된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니까 물론 일본어밖에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왜 이렇게 놀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짓궂은 놀림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아무도 같이 놀자고 말해주지 않았고, 내가 다가가려 하면, “~ 조선인이 왔다, 마늘냄새가 너무 지독해.” 하며 코를 쥐어 잡고 모두들 도망가 버렸고, 심할 때는 옆을 지나갈 때 때리는 녀석까지 나타났을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나는 큰 맘 먹고 어머니에게 속을 털어놓았다.

엄마, , 김해수 말고 이와타(岩田)가 좋아.”

저녁밥을 짓던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보았다.

, 김해수라는 이름, 이젠 싫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는 학교에서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힘없이 고개만 저으며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그날 밤, 일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내 얘기를 듣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 ‘이와타라는 이름이 좋다고 했다며?”

, 예에

내 대답과 동시에 아버지의 커다란 주먹이 내 머리로 날아왔다.

네 진짜 이름은 김해수라고 전에 얘기했잖아!”

아버지는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는 늘 그랬던 것처럼 상 앞에 앉아 사발에 막걸리를 부어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나의 실낱같은 바람은 보기 좋게 무시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그날이 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죠센진! 죠센진! 하고 부르며 비웃어대는 일이 계속되는 가운데 동급생 하나가 반 아이들을 휘어잡듯 말했다.

맞아, 이 자식은 조선인이니까 금방 알아 볼 수 있게 표시를 해주자.”

말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어이없게도 급장이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 누가 이 자식 좀 붙들고 있어!”

동급생 하나가 나를 붙잡고 꼼짝 못하게 했다.

그만 둬, 뭘 하려는 거야!”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잖아, 그럼 조선인은 일본인의 가축이나 마찬가지니까 표시를 해두지 않으면 안 되지!”

급장은 앞 수업에서 썼던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서 내 오른쪽 눈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와하하하하

모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이쪽이다.”

급장은 이번엔 왼쪽 눈에 X표를 그리더니,

이렇게 하면 가축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겠지, 하하하하

급장을 필두로 동급생들은 큰 소리로 계속해서 웃어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교실을 뛰쳐나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어째서어째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야! 난 가축이 아니야, 이름이 김해수라고 너희들과 뭐가 다르냔 말야! 얼굴도 모두 똑같잖아!”


큰 소리로 울며 정신없이 달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얼굴에 표시가 그려진 채 집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가 내 모습을 보고는 누가 그랬어!?” 하며 큰소리로 물었다. 내가 훌쩍거리며 겨우 설명하자,

이놈들을! 학교로 가자! 이런 짓을 한 녀석들을 절대 가만 안 둘 테니까!” 하며 내 팔을 잡아끌고 학교로 향했다.

그만 울어. 그렇게 우니까 그 자식들이 우습게보고 덤비는 거야!”

학교로 가는 도중에도 어머니는 몇 번씩 나를 꾸짖으며 성큼성큼 앞서 걸었고, 이윽고 학교에 도착하자 수업중임에도 불구하고 교실 문을 힘껏 열고는,

누구냐! 누가 우리 애한테 이런 몹쓸 짓을 한거냐!”

하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알고 있겠죠?”

그 다음엔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담임선생을 노려보았다. 선생님은 어머니의 험악한 표정에 기가 질렸는지 사정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아무 말 없이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화가 치민 어머니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주범격인 급장과 범인들을 보더니,

너희들이지!” 하고 크게 고함을 쳤다.

그런데 급장을 비롯한 그 범인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키며 난 아니지?” “나도 아니지?”하며 하나같이 확인이라도 하듯 나를 향해 물었다. 그 때마다 나는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의 이름을 말하면 그 다음 보복이 더 심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들과 담임선생, 게다가 어이없는 내 모습에 어머니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고,

따라와!” 하고 소리치고는 내 팔을 억지로 잡아끌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파, 아프다구 엄마.”

시끄러! 잔말 말고 따라와!”

얼마나 억울했을까, 어머니는 나를 잡아끌고 집에 돌아와서는

한심한 녀석 같으니, 이 멍청아!”

하며 있는 힘껏 내 뺨을 때리셨다.

으아-”

나는 큰소리로 울었다.

그치지 못해, 바보야! 이 못난 놈아!”

어머니는 몇 번이나 내 뺨을 때리셨다.

야무지고 강단 있는 어머니에게는 친구들한테 들볶이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사내답지 못한 내 모습에 더더욱 분함과 한심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어머니는 절대 학교를 쉬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토록 싫었던 학교와 생각지도 못한 이별의 날이 온 것이다.

여름방학도 절반이 지난 어느 날, 서둘러 등교하라는 연락을 받고 학교에 가보니 많은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교장선생이 단상에 올라가 목청을 높여 모두에게 알렸다.

어제, 우리 대일본제국은 전쟁에서 졌습니다. 이제부터 미군이 일본에 상륙해 올 것입니다. 이 학교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릅니다. 여름방학이 끝나더라도 한동안은 학교에 오지 마십시오.”

어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단상에서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내려오는 교장과 심각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담임을 보았지만, 한동안은 학교에 오지 말라는 교장의 말을 들었을 때 어쩐지 기쁨이 솟아올랐다.

이것으로 그토록 심하고 짓궂은 구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나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웠고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이제 살았다고 혼잣말이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전쟁이 끝났다는 것도 내게는 기쁜 일이었다. 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더 이상 공습을 두려워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매일같이 공습경보가 울리면 그 때마다 방공호로 뛰어 들어갔다.

도망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면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어서, 빨리! 빨리!”

어머니의 재촉에 이끌려 방공호로 걸음을 서둘렀다.

일단 방공호에 들어가면 그대로 날이 밝을 때까지 호 안에서 잠이 드는 적도 있었다.

추운 겨울밤에는 난방을 위해 방공호 안에 연탄을 피웠는데, 좁은 공간에서는 연탄이 불완전 연소 되어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높았다. 실제로 중독을 일으킨 적도 있었지만, 그 때는 다행히 빨리 알아차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여동생은 간신히 살았다. 그런데 실제로 이웃에서 일가족 4명이 중독되어 죽은 사건도 있었다.

야간 공습이 시작되면 미군 B29기 수 십 대가 편대를 짜고 밤하늘 높이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왔다. 뒷산에는 일본군의 고사포 진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면 잿빛기체가 불빛에 보였다. 그 편대를 향해 고사포가 ~~’ 발사되지만 그마저도 몇 발로 끝나버리고 B29기에는 전혀 닿지도 않았다. 한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침묵이 찾아온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함석지붕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미군의 공습이 내가 살고 있는 요코하마 남부는 그냥 통과했으므로 미군의 폭탄 때문이 아니다. 일본군의 고사포 탄피로 생긴 구멍이다. 어느 한 구석도 일본군은 의지가 되지 않는 존재였다.

 

어느 날, 어른들이 죽창을 들고 달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저마다 미군 비행기가 떨어졌다고 소리쳤다. 아이들도 굉장하다, 굉장해하며 신이 나서 뒤를 쫒았지만 잠시 후 모두들 갈 때와는 전혀 다른 침울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떨어진 것이 미군기가 아닌 일본 비행기였다고 가르쳐 주었다. 어른들은 모두 실망했지만, 나에게는 별일도 아닌 걸하는 게 속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질녘, 북쪽 하늘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보았다. 마치 석양빛처럼 어쩌면 저리도 예쁜 하늘일까 생각했는데, 그쪽 방향으로 해가 질리는 없었다.

예쁘다

나는 신기한 석양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해수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아버지의 넷째 동생인 만수 삼촌이 토목작업을 끝낸 작업복 차림으로 서있었다.

삼촌 저기 봐, 정말 예쁜 저녁노을이야.”

내 말에 삼촌은 한숨을 지으며

해수야, 저건 저녁노을이 아니다, 저건 공습이야.”

공습?”

잘 들어봐, 폭발음이 울려오잖아.”

만수 삼촌의 말을 듣고 귀를 기울이자 쿵- - 마치 불꽃놀이를 할 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저 붉은 하늘 아래서 지금쯤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겠지. 빌어먹을, 이 몹쓸 전쟁을 일본은 언제까지 할 작정인지.”

만수 삼촌은 붉게 물든 북쪽 하늘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날, 삼촌과 함께 보았던 붉은 하늘은 요코하마 아니면 가와사키를 덮친 공습이었던 같다.

어른이 되어 조사해보고 알게 되었는데, 실제로 요코하마도 529500대를 웃도는 B29기대규모 편대에 의해 많은 공습을 당했고, 8,000~ 1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요코하마시() 중심부를 공격한 것으로 내가 직접 공습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날 보았던 석양빛 같은 하늘이 310일 도쿄대공습이었다고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도쿄의 대부분이 불에 탔고,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공습이다. 하지만 도쿄대공습은 한밤중에 있었던 일로 그날처럼 해질 무렵이 아니다. 도쿄에는 5월의 대공습도 있었으니 그 때였을지도 모르고, 요코하마도 가와사키도 여러 번 공습을 당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 중 하나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도망쳤고,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도 무참하게 불에 타 고통 속에서 죽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나에게는 그런 두려운 광경 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저 아름다운 하늘이라고만 생각했었다.



                                                                                                                        * 제2화로 이어집니다.



출처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글쓴이 : 슬픈하늘(정미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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